종종 대체 역사물을 보다보면, 왜구라는 녀석들이 등장하지요. 오늘은 일본 해적, 왜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왜구(일본 해적) 어떤 놈들이고, 무슨 특징이 있는가? |
왜구란 어떤 놈들인가?
오늘은 왜구가 어떤놈들이고, 어떻게 해적질을 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여기저기를 보고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므로, 정확하지 않은 수도 있습니다. 참고만 해주세요!
왜구의 의미
왜구(倭寇)란 왜놈들로 이루어진 도적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왜놈들은 일본쪽에 사는 사람들을 낮추어 부르는 말입니다. 즉,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한반도와 중국 해안지역을 약탈하고 밀무역도 행하던 해적집단을 의미합니다.
왜구가 왜 성행하였을까?
13세기 이전에도 바다에서 무리지어 노략질하는 일본 출신 해적들은 존재하였지만, 본격적으로 성행한 것은 13세기 이후입니다. 성행의 이유는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대내적인 요인
당시 일본은 남북조시대로 두명의 덴노가 나라를 둘러 갈라 내전을 하고있었습니다. 남조에 조달할 군량미가 부족해지자 해적질을 통해서 그 군량미를 조달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내전으로 인해서 민중의 생활이 어려워진 것도 한몫 할 것입니다.
대외적인 요인
당시 중국대륙은 원명교체기로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세워지려던 시기였습니다. 그만큼 혼란스러운 시기였고, 해안선의 경계 또한 소홀해지며 약탈하기 좋은 환경이 마련되어있었습니다.
한반도의 경우 고려후기의 시기도 여러 전쟁을 통해 국력이 쇠하고 지배권이 약해져있던 시기였습니다.
왜구의 특징
잔인함
해적은 바다에서 배를 타고 노략질하는 집단입니다. 따라서 배라는 한정된 공간이 그들의 특징입니다. 한정된 공간에 노략질한 물건이나 사람을 두어야 하기 때문에 더 좋은 것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없애버려야합니다. 따라서 선택받지 못한 물건이나 사람은 죽이고 불태우는 잔인한 면모를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운빨인생
큐슈지역 부근이 왜구의 근거지입니다. 이들은 한반도를 털러 올때에는 대마도지역을 근거지로 활동하였고, 중국을 털러 갈 때에는 코토라는 섬지역에 모여서 출발하였다고 합니다.
중국을 털러 갈 때에는 우습게도 출발 시기의 바람의 방향에 따라서 목적지가 정해졌습니다. 바람이 북쪽으로 불면 산동성쪽으로, 바람이 남쪽으로 불면 절강성이나 복건성 쪽으로 향했습니다. 남쪽으로 가는 것을 선호했다고 합니다. 절강성이나 복건성이 더 부유해서 털어먹을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의 존재
왜구라고 하면 훈도시만 입은 왜소한 체구의 남자들이 원숭이처럼 날쌔게 움직이는 모습을 연상하기 마련인데,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본격적인 무장을 하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왜구는 작으면 20척부터 많으면 500척 규모의 대형 선단으로 움직였습니다. 단순히 바다를 지나가는 상선을 털어먹는 것에서 지나지 않고, 항구나 마을에 상륙하여 도자기공장이나 비단공장을 점거하고 장인들이 일정 기간 생산한 물품을 그대로 가지고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섬을 점령하여 기지를 만들기도 하고, 그 기지를 기점으로 음력 3월에서 10월 정도의 기간동안 인근 지역을 털어먹으러 다녔다고 합니다.
고려 말의 왜구
고려는 원래 북방을 막을 군대만 존재하였고, 아랫지방의 해군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왜구들이 기승을 부릴 때 적절할 대처를 하기 어려웠습니다. 왜구의 침략은 기록된 것만 529회, 고려 우왕때에만 400회의 침공이 있었다고 합니다.
주된 침략 대상
왜구의 주 침략 대상은 곡창지대가 있는 충청, 전라지역이었고, 경상도 지역 또한 많은 침략을 당했습니다.
당시 곡창지대에서 생산한 쌀을 세금으로 거둘 때 바다와 강을 통해 조운선으로 운반하였는데, 이 조운선이 주된 침략 대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각각 털어먹다가, 결국에는 이 조운선들이 개경으로 모인다는 것을 알게된 왜구는 개경 앞바다를 점거하고 이곳에서 조운선을 털어먹었다고 합니다.
이밖의 약탈 대상
이뿐만 아니라 바닷가에 보이는 마을 또한 약탈 대상이었는데, 한창때에는 마을 주민들이 마을을 버려두고 좀 더 내륙쪽에 자리잡고 생활하였고, 기존의 마음에는 잠깐씩 들러서 필요한 것만 가져가곤 했다고 합니다.
이성계의 황산대첩
1380년 지금의 전북 남원 인근에서 이성계가 왜구를 대상으로 크게 승리한 전투입니다. 황산대첩의 대승으로 인해 이성계는 전국적인 스타덤에 올랐을 정도로 왜구는 고려의 큰 골치덩어리였고, 고려를 망하게 한 큰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이성계가 화살 한발로 적장 아지발도의 투구 끈을 끊어버리고, 그 다음 화살 한발로 적장의 헤드샷을 날렸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사실은 이성계가 이러한 작전을 의도한 것은 맞지만 적장을 직접 죽인 것은 아닙니다. 이성계는 적장의 투구를 날리고, 곧바로 이성계의 의형제 이지란이 헤드샷을 날렸다고 합니다.